5.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6.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
출 19:5-6 [개역개정]

성경에 기록하기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여라" 하였습니다.
벧전 1:16 [새번역]

 


 

거룩함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 그리고 오늘날 우리들에게까지 거룩하라고 하신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거룩하시기에 우리도 거룩해야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거룩함이란 무엇일까?

 
거룩함이란 것은 '구별됨'이라고도 볼 수 있다.
 
모세 오경 특히, 레위기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십계명, 정결법, 절기법, 제사법, 그밖에 사람들을 대하는 법 등의 율법을 세우신다. 그 이유는 이스라엘 민족들과 다른 민족을 구별하기 위해서이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엡 1:7 [개역개정]

 


 

오늘날의 우리

오늘날의 우리 또한 과거 이스라엘 백성들과 다를 것이 없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 분과 교제하기를 원하신다. 우리가 거룩하길 원하신다는 말이다. 다시 말해서, 세상 속에서 우리도 '구별됨'을 가져야한다.

우리는 무엇을 해야할까?

 
우리가 할 것은 크게 없다. 왜냐하면 구원은 우리의 능력, 힘, 노력 등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밖에서 오는 것', 자세히 얘기하면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이다. 우리는 단지,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을 믿고, 따르면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이 무엇인가?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100세에 얻은 이삭을 바치라고 하신다. 아브라함은 큰 고민 없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다. 이삭을 칼로 내려치려던 중,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을 멈춰 세우신다. 하나님께서 사람의 이름을 두 번 부르신 경우는 성경을 찾아봤을 때, 지극히 적다. 많이 급하셨던 모양이다.
 
그 후, 하나님께서는 "이제 네가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겠다"라고 말씀하신다.
 
오늘날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외아들이신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주셨다. 그리고, 온갖 고문과 핍박을 당하고, 결국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 그는 이 땅에 살아있는 동안 참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하나님과 사람에게 진실했고, 헌신했고, 하나님과 사람을 섬겼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죄를 짓고 살아가는 모습에 진노하셔서, 그리고 우리가 죄의 종 노릇하는 것을 안타깝게 여기셔서 하나뿐인 아들을 우리에게 주셨다.
 
우리도 나무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보고 깨달아야한다. "이제 하나님께서 나를 얼마나 사랑하신지 알겠어요"라고. 그리고 참 사람의 모습, 하나님께서 지으신 하나님의 형상 그대로의 모습대로 살아가야한다. 그것이 오늘날의 거룩함, '구별됨'일 것이다. 그렇다면 거룩함을 얻은 후에는 어떻게 살아야할까?
 

그는 각 사람의 능력을 따라, 한 사람에게는 다섯 달란트를 주고, 또 한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를 주고, 또 다른 한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다.
마 25:15 [개역개정]

 


 

달란트 비유

재능, 주변 사람들, 주변 환경, 재물 등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모두를 다 다르게 지으셨고, 다 다르게 주셨다.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주신 달란트가 다 다르다는 말이다. 즉, 하나님께서는 각자에게 주신만큼 남기길 원하신다. 마태복음 25장의 달란트 비유가 이 말이다.
 
누군가는 외과적 수술로 사람을 살리는 일을, 누군가는 상담이나 심리학으로 사람을 살리는 일을, 누군가는 자원봉사로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한다.
 
서로 겉으로는 다른 일을 하는 것 같지만 모두 '사람을 살리는 일'이다. 이것이 복음의 본질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을 전하는 것이 핵심이지만 모두 '사람을 살리는 일'이다.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마 25:40 [개역재정]

 


 

십자가를 따르는 삶

여러 교역자, 부교역자들은 '각자의 십자가'를 지고 그리스도를 따르라고 한다. 고난과 핍박이 있는 삶을 살라고 한다. 도대체 이게 무슨 소리인가? 너무나도 모호하고, 시대에 맞지 않는 듯하다. 십자가를 지고 그리스도를 따르라는 말은 각자의 '결핍'을 가지고 그리스도를 따르라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모두는 살아온 삶의 과정 중에서 여러 어려움과 결핍들을 가지게 된다. 그리스도의 사랑과 구원으로 인해 그 모든 것들로부터 자유로워진다. 그 어려움과 결핍들을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고백하며 치료 받아야 자유로워질 수 있다. 하지만 완치된다는 말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데려가시는 날까지 우리 모두는 그 상처들을 가지고 하나님을 따르며 살기를 노력하는 것이다.
 

지극히 작은 자

우리는 각자의 결핍을 가지고, 동일한 결핍이 있는 자들을 살려야한다. 더 정확히 말하면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주신 결핍과 그 결핍 속에서 나를 건져내주시고 채워주신 하나님을 전하는 것이다. 같은 아픔을 가진 사람만이 진정으로 그들을 이해하고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지극한 작은 자였을 때, 그 속에서 하나님께서 복음을 온전히 알게 해주신다고 믿는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는 '가장 낮은 자리'에서 '가장 낮은 자'의 모습으로 우리를 만나주시는 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려움이나 아픔이 없는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사랑을 온전히 알기 힘들다. '지극히 작은 자'가 되어보지 못했으니까.
 
성경에서 하나님이 본 존재와 동일시 해주는 것은 '지극히 작은 자'밖에 없다.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고, 사람을 섬긴다라는 말'은 '지극히 작은 자'로 향하는 마음과 섬김이다.
 
때로는 우리가 지극히 작은 자가 된다. 하지만 하나님의 은혜 받고 의인이 되었으니, 그리스도를 닮아 우리는 각자에게 주어진 '달란트'를 가지고 누군가를 살리는 일을 해야한다. 하나님께서는 그 속에서 일하셔서 복음을 '믿어지게' 만들어주신다.
 

34. 그들 가운데는 가난한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다. 땅이나 집을 가진 사람들은 그것을 팔아서, 그 판 돈을 가져다가
35. 사도들의 발 앞에 놓았고, 사도들은 각 사람에게 필요에 따라 나누어주었다.
행 4:34-35 [새번역]

 


 

하나님 나라

우리는 흔히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가자'라고 말한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변호가 필요 없으시고, 하나님 한 분 만으로 그의 나라는 완전하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에 동참'한다라고 표현해야 할 것이다.
 
신약에서는 하나님 나라에 동참하는 방법과 여러 예시들을 보여준다. 대표적으로 '오병이어'와 '행 4:34-35'이 있다. 어린 아이가 작은 떡과 물고기를 그리스도께 내어드렸을 때 하나님께서는 넘치도록 배풀어주신다.
 
행 4:34-35 말씀, 초기 교회에서 공동체 구성원들이 각자의 땅이나 집 등 가진 것들을 모두 팔고, 모든 구성원들에게 분배하여 가난한 사람이 없었다. 즉, '능력에 따라 내고, 필요에 따라 나눈다'
 
여기에 하나님 나라의 키워드가 있다고 믿는다. '없는 데서 나오는 풍성함'이다. 나의 시간이 없어서, 재물이 없어서,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잘 살아내지 못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시간, 재물, 마음의 여유가 없어도 그 부족한 데서 하나님께 온전히 드리겠다고 고백하고 그 삶을 살아내려고 노력할 때, 하나님께서는 풍성함으로 보답하신다.
 
겉으로 보이는 풍요가 아니라, 마음의 넉넉함, 기쁨, 만족감을 느끼게 해주신다. 그 너머로 '영원한 생명과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려주신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에 동참하는 것이다.
 

땅에는 언제든지 가난한 자가 그치지 아니하겠으므로 내가 네게 명령하여 이르노니 너는 반드시 네 땅 안에 네 형제 중 곤란한 자와 궁핍한 자에게 네 손을 펼지니라
신 15:11 [개역개정]

 


 

결핍

나의 마음과 시선이 가는 곳은 가정과 사람으로 인해 아프고 힘든 사람들, 가난하고 살아가는 것이 힘든 사람들이다. 왜냐하면 그것들이 나의 '결핍'이기 때문이다.
 
나는 살아온 환경과 현재의 환경이 결코 넉넉하지 않았다. 오히려 궁핍하고 어려웠다. 항상 돈이 없었고, 항상 부족한 능력들이 너무 많았다. 사교성도 부족했고, 예민했고, 멍청했다. 일생을 '결핍'을 채워오면서 살기 바빴다. 그래서 너무나도 답답했다. 가족이 가족의 역할을, 부모가 부모의 역할을, 형이 형의 역할을, 친척들이 친척들의 역할을 하지 못해줬다고 느꼈다. '지극히 작은 자'였다.
 
그렇기에 '지극히 작은 자'들의 아픔과 어려움을 이해하고, 듣고, 고민해줄 수 있다. 그런 마음과 그것들을 할 수 있는 달란트를 나에게 많이 주셨다고 믿는다. 보이는 것 너머를 볼 수 있는 통찰력을 가졌고,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는 마음과 여유가 있고, 여러 잘못된 상황에 대해 불편할 수 있는 예민함을 주셨다.
 
무엇보다 그 많은 어려움 속에서 나를 채워주시고 함께해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느꼈다.
 
그래서 나는 나의 '결핍'과 '신 15:11 말씀'을 가지고, 나와 우리의 하나님을 전할 것이다. 이것이 '없는 데서 나오는 풍성함' 하나님 나라라고 믿고, '거룩하여진 백성'인 내가 할 일이다.
 
누군가가 보기에는 아주 작고 보잘 것 없는 일들이라고 생각하겠지만, 그 속에서 하나님께서 일해주실 것을 난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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