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그 때에 살렘 왕 멜기세덱은 빵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다. 그는 가장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다.
19. 그는 아브람에게 복을 빌어 주었다. "천지의 주재, 가장 높으신 하나님, 아브람에게 복을 내려 주십시오.
20. 아브람은 들으시오. 그대는, 원수들을 그대의 손에 넘겨 주신 가장 높으신 하나님을 찬양하시오." 아브람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에서 열의 하나를 멜기세덱에게 주었다.
창 14:18-20 [새번역]

 


 

십일조의 등장

성경에서 얘기하는 첫 십일조는 창세기에 나온다. 아브라함(당시 아브람)이 멜기세덱에게 본인이 전리품으로 얻게 된 것의 십분의 일을 드린다.

 

멜기세덱은 왕이자 제사장으로 언급되는데, 신약성경에서 그리스도는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서 우리의 영원한 대제사장이 되었다고 얘기한다. 그러니 십일조를 '멜기세덱에게 드렸다는 것'은 십일조를 '하나님께 드렸다'는 상징적인 의미가 될 수 있을 것이다.

 

30. 그리고 그 땅의 십분의 일 곧 그 땅의 곡식이나 나무의 열매는 그 십분의 일은 여호와의 것이니 여호와의 성물이라
레 27:30 [개역개정]

26. 너는 레위인에게 말하여 그에게 이르라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받아 너희에게 기업으로 준 십일조를 너희가 그들에게서 받을 때에 그 십일조의 십일조를 거제로 여호와께 드릴 것이라
민 18:26 [개역개정]

22. 너는 마땅히 매 년 토지 소산의 십일조를 드릴 것이며
23. 네 하나님 여호와 앞 곧 여호와께서 그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네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의 십일조를 먹으며 또 네 소와 양의 처음 난 것을 먹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기를 항상 배울 것이니라
신 14:22-23 [개역개정]

 


 

십일조

하나님께서는 모세 때에 십일조를 율법으로 세우셨다. 12지파 중 레위 지파는 유일하게 토지를 기으로 받지 못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11지파에서 여호와께 드리는 십일조를 모두 레위 지파에게 주셨다. 하지만 그렇다고 레위 지파도 십일조에서 제외된 것이 아니다. 레위 지파는 '그 십일조의 십일조'를 여호와께 드려야했다.

 

십일조를 받기를 원하셨던 하나님의 목적은 하나님의 사람들로 하여금 '여호와를 경외하기'를 알게 하시기 위함이었다.

 

하나님께서 알려주시는 십일조의 정신에 대해 알아볼 필요가 있다.

 

24.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거제로 드리는 십일조를 레위인에게 기업으로 주었으므로 내가 그들에 대하여 말하기를 이스라엘 자손 중에 기업이 없을 것이라 하였노라
민 18:24 [개역개정]

 


 

하나님께 헌신하는 자들을 위한 십일조

십일조의 첫 번째 정신은 '하나님께 헌신하는 자들을 위한 십일조'이다. 하나님께서는 레위 지파를 세우셔서 제사와 관련된 일들을 모두 맡기셨다. 그렇기에 레위 지파는 그 당시 하나님께 헌신하는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그런 레위 지파에게 토지의 기업을 주시지는 않았지만, 온전히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맡기셨기에 그들에게 남은 지파들의 십일조를 받아서 살아갈 수 있게 해주셨다.

 

26. 그 돈으로 마음에 드는 것을 사십시오. 소든지 양이든지 포도주든지 독한 술이든지, 어떤 것이든지 먹고 싶은 것을 사서, 주 당신들의 하나님 앞에서 당신들과 당신들의 온 가족이 함께 먹으면서 즐거워하십시오.
신 14:26 [새번역]

 


 

축제를 위한 십일조

'그 돈'십일조를 의미한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십일조를 드리는 장소가 있다고 성경에 나오는데, 그곳까지 가기 힘들다면 십일조로 드릴 것들을 돈으로 바꾸어, 이웃과 가족이 함께 먹고 마시며 즐거워하라고 하신다. '축제를 위한 십일조'로 생각해볼 수 있다.

 

27. 그러나 성 안에서 당신들과 함께 사는 레위 사람은, 유산도 없고 차지할 몫도 없는 사람들이니, 그들을 저버리지 않도록 하십시오.
28. 당신들은 매 삼 년 끝에 그 해에 난 소출의 십일조를 다 모아서 성 안에 저장하여 두었다가,
29. 당신들이 사는 성 안에, 유산도 없고 차지할 몫도 없는 레위 사람이나 떠돌이나 고아나 과부들이 와서 배불리 먹게 하십시오. 그러면 주 당신들의 하나님은 당신들이 경영하는 모든 일에 복을 내려 주실 것입니다.
신 14:27-29 [새번역]

 


 

구제를 위한 십일조

또한, 하나님께서는 레위 지파, 나그네, 고아, 과부처럼 법의 보호 없이는 살아가기 힘든 사람들, 생존이 보장되지 못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해 십일조를 사용하길 원하신다. '구제를 위한 십일조',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세 번째 십일조의 정신이다.

 

23.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마 23:23 [개역개정]

 


 

신약성경에서 말하는 십일조

신약성경에서는 십일조에 대해 크게 언급하는 내용이 없다. 하지만 그리스도께서 했던 마 23:23 말씀을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십일조를 형식적으로만 드리고, 그 십일조의 뜻과 정신을 이어 받지 못한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에게 예수님은 잘못을 명확하게 짚으셨다.

 

십일조는 '정의'와 '긍휼'을 위해 사용되어야 한다. 위에 언급한 세 가지 십일조의 정신을 가지라는 의미일 것이다.

 

40.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마 25:40 [개역개정]

45. 이에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하시리니
마 25:45 [개역개정]

 


 

오늘날 십일조의 정신

한 때,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이 얘기하는 것이 조금은 다를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하나님을 알아가고 그의 말씀을 알아가다보니,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이 말하는 것은 동일하다고 보여지는 것 같다. 그렇기에 십일조의 정신은 구약성경, 신약성경, 오늘날 모두 동일하다고 믿는다.

 

위에 언급한 세 가지 십일조의 정신, '하나님께 헌신하는 자들을 위한 십일조', '축제를 위한 십일조', '구제를 위한 십일조', 이 세 가지 정신을 오늘날의 우리도 지켜야한다.

 

오늘날의 예배는 제사가 아니고, 오늘날의 교역자들은 왕도, 제사장도, 선지자도 아니다. 또한, 목사, 강도사, 전도사, 장로, 권사 등은 직분일뿐, 직업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 개개인이 이고, 제사장이고, 선지자이고, 하나님께 드려질 화목제물이다. 어쩌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원맨쇼를 원하신 것 같기도 하다. 그럼에도 우리에게 신앙공동체는 정말 중요하다.

 

그럼에도 우리의 십일조를 통해 교역자들에게 급여를 제공하는 것은 '하나님께 헌신하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더 넓게 본다면 신학대를 나오지 않아서 교역자로 칭함을 받지 못하더라도, 주변에 하나님께 헌신하는 자들이 있다면 때에 따라서는 그들에게 십일조를 드려야할 수도 있어야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이웃들과 가족들과 식사를 나눌 때도, 재물을 사용할 줄도 알아야할 것이다. 식사의 교제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나누고, 서로의 깊은 교제를 가지며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감사하며 기뻐할 수 있어야될 것이다.

 

모든 성경에서 그리스도께서 본인과 동일시하는 존재가 하나 있다. '지극히 작은 자'이다. 어쩌면 '하나님께 십일조를 드린다'의 가장 정확한 의미는 '지극히 작은 자'를 위해 사용하는 십일조일 것이라고 믿는다. 때로는 우리가 지극히 작은 자가 된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사람을 통해, 상황을 통해 그런 우리를 도와주시고, 살려주신다. 그러니 우리도 주변에 지극히 작은 자가 어딨는지 찾고, 지극히 작은 자들을 향해 우리의 재물을 사용할 수 있어야한다. 하나님께 십일조를 드리듯이 말이다.

 


 

온전한 십일조

단순히 형식적으로 드리는 십일조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행동 그 내면의 깊은 동기를 보신다. 똑같이 교회에 내는 십일조여도, 누군가는 '하나님께 드린다'라는 깊은 내면의 동기에서 하나님께 드리고, 다른 누군가는 그렇지 않다. 하나님은 분명 전자를 더 기쁘게 받아주실 것이라고 믿는다.

 

더 나아가 습관적으로 교회에 내는 십일조보다는 내게 보여지는 '지극히 작은 자' 향하는 십일조라면, '하나님께 드리는 온전한 십일조'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다. 우리에겐 고민해보는 시간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 십일조의 정신을 알고, 하나님께 십일조를 드려야한다. 그럴수만 있다면 우리가 십일조를 사용하는데, 재물을 사용하는데 더욱 자유로워지고, 하나님께 더 온전한 십일조를 드릴 수 있게 된다고 나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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