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왔고, 또 그 죄로 말미암아 죽음이 들어온 것과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기 때문에 죽음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게 되었습니다.
롬 5:12 [새번역]


20. 죄를 지은 영혼 바로 그 사람이 죽을 것이며, 아들은 아버지의 죄에 대한 벌을 받지 않을 것이며, 아버지가 아들의 죄에 대한 벌도 받지 않을 것이다. 의인의 의도 자신에게로 돌아가고, 악인의 악도 자신에게로 돌아갈 것이다.
겔 18:20 [새번역]

 


 

그리스도를 구원자라고 믿는 사람들은 십자가 사건으로 인해, 인류가 죄로부터 구원 받았다고 믿는다. 성경에서 얘기하는 죄란 무엇일까? 단순히 윤리적인, 도덕적인 잘못들을 얘기할까? 어쩌면 성경에서 얘기하는 죄는 윤리와는 다르면서도, 인간 중심적이지 않을지도 모른다.
 
성경에서 얘기하는 죄는 윤리적인 기준이 아니다. 물론, 겹치는 부분도 있을 수 있지만 윤리의 기준은 인간이기 때문에 성경에서 얘기하는 죄와는 성격이 다르다. 성경에서 말하는 죄의 기준은 오로지 하나님이다.
 
이러한 죄의 기준은 어느 정도 인간의 윤리와 겹치는 부분이 있지만, 오히려 반대이다. 인간은 성경의 일부를 채택하여 과거와 현재의 법을 만들고, 윤리적인 기준을 잡아왔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를 통해 근본적인 죄에 대해 얘기한다. 한 사람(아담)으로부터 죄가 흘러 들어와서 그가 죽음에 이르렀던 것처럼, 아담 이후의 인류도 죄를 지어서 죽음에 이른다고 얘기한다. 여기서 고민해봐야할 것은 '원죄'에 대한 것이다.
 
사도 바울이 롬 5:12을 통해 강조하려던 부분은 '아담으로부터의 원죄'가 아니라 '선과 악을 판단하는 기준이 인간이 되어 버리는 것'이 죄가 된다는 것이다. 죄로 인해 결국 죽음에 이른다고 본다.

우리는 흔히 아담의 죄로 인해 아담 이후의 인류는 모두 태어날 때부터 죄를 가진다고 말한다. '원죄'를 갖고 태어난다는 말이다. 그 원죄를 해결해주기 위해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고 얘기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관점으로는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가 태어나셨다는 사실이 설명되지 못하는 듯하다. 죄가 없으신 그리스도로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태어났다는 사실에 주목하곤 한다. 한 번도 남자와의 관계가 없었던 '동정녀' 말이다. 마리아가 '동정녀'일지라도 원죄의 관점에서 본다면 마리아도 죄인이고, 그 마리아의 몸에서 태어나신 그리스도도 죄를 가지고 있어야할 것이다.
 
겔 18:20에서 에스겔은 '개인의 죄'에 대해 얘기한다. 아버지가 아들의 죄로 처벌 받지 않고, 아들도 아버지의 죄로 처벌 받지 않는다고 얘기한다. 즉, 죄는 개인전이라는 얘기이다. 그렇다면 아담과 하와의 후손이라고 이유로 인류가 죄를 가지고 태어난다는 말에 대해서 우리는 다시 한 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원죄는 설명이 안 되는 부분이 있을 뿐더러, 성경에서 얘기하는 근본적인 죄와는 거리가 있어보인다.
 

10.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의인은 없다. 한 사람도 없다.
11. 깨닫는 사람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사람도 없다.
롬 3:10-11 [새번역]

 


 

과녁에서 벗어남

신약성경에서는 죄를 2가지로 얘기한다. 첫 번째로는 '과녁에서 벗어남'이다. 즉, '하나님께로부터 벗어남'이다.
 
롬 3:11에서 사도 바울은 '깨닫는 사람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사람도 없다'라고 말하며, 인류의 죄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다.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하던 시기에는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숭배를 하던 사람들이 많았다. 이들은 본인들의 잘못을 깨닫지 못했고, 하나님을 찾지도 않았던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출애굽 이후 율법을 통해 우상숭배를 분명히 금지하셨다. 그리고, 여러 율법을 세우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의 율법을 지키길 원하셨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굉장히 싫어하시는 우상숭배를 계속해서 반복했고,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을 찾지 않았다.
 
그러한 점들을 사도 바울은 죄라고 꼬집었다. 사도 바울이 지적한 죄는 우리가 현재 생각하는 윤리와 거리가 먼 것을 알 수 있다.
 

12.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 같이 우리의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마 6:12 [새번역]

 


 

빚짐

두 번째 죄의 근본적인 의미는 '빚을 짐'이다.
 
그리스도께서 마태복음에서 알려주신 기도, 우리가 오늘날 주기도문으로 고백하는 기도에 나온, 죄에 대한 의미는 '빚을 짐'이다. 죄 사함을 받았다는 의미는 '빚의 탕감'이다.
 
그리스도께서 공생애 사역을 하던 시기, 이스라엘에서는 고리대금이 유행했다고 전해진다. 로마의 식민 지배를 받던 시기, 이스라엘 백성들은 먹고 사는 것조차 힘들었다. 그래서 돈을 빌릴 수밖에 없었는데, 빌린 돈에 말도 안 되는 이자가 붙어서 살아가는 것이 너무나도 어려웠던 것이다.

하나님을 제외한 어떠한 것에라도 구속된 상태를 ‘죄’라고 바라볼 수 있다. 우리는 흔히 ‘구속하신 그 사랑’, ‘구속사적 관점에서 성경 읽기’ 등의 표현을 하곤한다. ‘빚을 짐’은 빚에 구속된 것을 의미한다. 성경에서는 다른 무언가에 구속된 상태가 곧, 우상숭배이고 죄라고 얘기한다.
 
그래서 신약성경은 이러한 문화와 시대를 반영하여, 사람들이 복음을 조금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빚을 짐'이라는 표현을 죄를 진다고 표현했다고 바라볼 수 있다. 이러한 '죄와 빚'에 대해서는 신약성경의 여러 비유를 통해 알 수 있다. 그리스도께서 '빚의 탕감'의 비유를 말씀하신 것을 우리는 신약성경에서 확인할 수 있다.

21. 옛 사람에게 말한 바 살인하지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22.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마 5:21-22 [개역개정]

15.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요일 3:15 [개역개정]

27. 또 간음하지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28.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마 5:27-28 [개역개정]

 


 

깊은 내면의 동기

근본적인 죄에 대해서 여러 말씀을 통해 살펴봤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는 어떻게 죄를 이해하고, 행동해야할까? 그 한 가지 답은 그리스도의 말씀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리스도께서는 마 5:21-22를 통해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살인한 자'라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마 5:27-28를 통해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이미 간음한 자'라고 말씀하신다.
 
그리스도께서는 말과 행동으로 드러나는 것은 '죄의 열매'이고, 어떠한 동기로 그런 말과 행동을 했는지, '깊은 내면의 동기'가 죄라고 우리에게 알려주셨다고 생각한다.
 

20.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롬 3:20 [개역개정]

7.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율법이 죄냐 그럴 수 없느니라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곧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라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
롬 7:7 [개역개정]

 


 

율법

하나님께서는 아담의 때부터 율법을 주셨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가인과 아벨, 아브라함, 이삭, 야곱, 그리고 그 이후의 자손들에게도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이 구전되어 전해졌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출애굽 이후에 명확하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을 내려주셨다.
 
그 율법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억압하여 자유를 제한하고 싶으신 것이 아니라, 죄가 무엇인지를 사람의 입장에서 알려주시기 위함이었다고, 사도 바울은 로마서를 통해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다.
 

7. 네가 올바른 일을 하였다면, 어찌하여 얼굴빛이 달라지느냐? 네가 올바르지 못한 일을 하였으니, 죄가 너의 문에 도사리고 앉아서, 너를 지배하려고 한다. 너는 그 죄를 잘 다스려야 한다.
창 4:7 [새번역]

 


 

드러나는 우상

우리의 우상은 사랑을 실천할 때 드러난다. 내가 누군가를 돕고, 그들의 삶에 관여했을 때, 이 모든 섬김이 나의 의를 드러내기 위함인지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내가 누군가를 섬기고, 그 섬김을 통해 내가 기대하던 결과가 나오지 않을 때, 화가난다거나 섬김의 대상을 나무라고 싶은 마음이 든다면 그 순간 나는 하나님을 섬긴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이 우상이 되어 나를 섬긴 것일지도 모른다.
 
사랑을 실천하고자 할 때, 깊은 내면의 동기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함인지 우리는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사랑을 실천한다는 명목으로 우리는 본인 자신을 우상으로 여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그릇된 깊은 내면의 동기가 죄일 수도 있다는 말이다.
 
우리는 하나님이 원치 않으시는 깊은 내면의 동기가 무엇인지 성경을 통해 알아가야 하고, 깨달을 바를 살아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죄를 지을 자유를 주셨지만, 죄를 다스릴 힘도 주셨기 때문이다. 죄를 다스릴 수 있다면, 우리는 살아가면서 죄의식과 수치심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

가인은 죄를 다스리는 것에 실패했지만, 그 이후의 여러 성경의 인물들은 죄를 다스리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다. 우리는 깊은 내면의 동기를 날마다 돌아보고, 하나님을 섬기고, 사람들을 섬기기를 주께 하듯 할 수 있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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